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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0-30 20:50
제 1회 개인전에 대한 평론을 싣습니다 - 신항섭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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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황여신
조회 : 9,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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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5. 13 - 5. 19
갤러리엠 (T.02-735-9500, 인사동)
글 : 신항섭 (미술평론가)
황여신의 문인화
소박하고 담백한 기운이 담긴 견실한 수묵담채
근래 문인화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미술대학에서 한국화과가 통폐합되고 있는 현실에서 보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문인화 인구가 단기간에 그처럼 증가하는 현실을 설명하기 어렵다. 문인화가 단기간에 마스터하고 작가활동을 할 수 있을 만큼 쉬운 그림이 아닌 까닭이다. 더구나 사군자가 주류를 이루는 도제식으로 일관하는 현실에서 볼 때 문인화 인구가 증가하는 현상을 반길 일만은 아니다.
황여신은 붓을 잡은 지 6년 밖에 되지 않는 일천한 화력이 전부이다. 전공도 하지 않은 채 10년도 채우지 못한 그가 첫 발표전을 준비하고 있다. 전공자에 비할 때 대학원을 마친 정도의 교육기간이다. 전문화된 교육기관도 아니고 사숙으로 대학 및 대학원 과정에 준하는 기간 공부하고 발표전을 연다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사군자에 머무는 소수의 화목을 가르치는 개인화실의 일반적인 경향으로 보아서는 얼른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일람하는 과정에서 이와 같은 시각이 선입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서로 다른 화목으로 이루어진 40점 정도 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작가적인 역량을 가늠하기에 충분했다. 한마디로 6년을 공부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안정된 기량을 보여주었다. 발표전을 연다는 사실이 전혀 시비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정도의 기술적인 완성도를 갖추고 있었다. 비록 세련미는 조금 부족할지언정 단기간의 교육기간에 도달할 수 있는 개인적인 완성도로서는 최상의 수준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번 전시회에 출품하는 작품의 화목으로는 매란국죽 사군자를 포함하여 모란, 연, 파초, 소나무, 포도, 괴석 그리고 산수화까지 다양하다. 문인화 화목에 그치지 않고 산수화 영역까지 아우르는 정도라면 기술적으로는 어떤 화목이든지 자유롭게 다룰 수 있다는 믿음을 준다. 작품 전체를 일괄할 때 어느 화목 하나 크게 빠지지 않고 고른 수준을 유지한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로 보아 기술적으로는 크게 탓할 데 없는 필력을 갖추었음을 알 수 있다.
일찍이 한국화단에서 이런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심재 이동일의 문하에서 이루어지는 독특한 수업방식에 따른 결과이다. 심재는 사군자를 시작하기 전에 선을 긋는 일로부터 시작하는데, 이는 조형적인 응용력을 갖추는데 필수적인 과정일 수 있다. 이 과정에서는 선의 조합에 따라 곧바로 추상적인 조형세계를 전개할 수 있는 조형감각을 익히게 된다. 따라서 그림의 가장 기초가 되는 다양한 형태의 필선을 익히고 나서 사군자에 들어간다. 이처럼 기초를 튼튼히 다진 후에 화목 하나하나에 대한 형태적인 이해 및 화법을 익히면서 최종적으로는 구성 및 구도로 마무리하게 된다.
이러한 수업방식으로 6년을 마친 그는 문인화에서 산수화에 이르기까지 자유로운 형태해석 및 주관적인 형사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적어도 문인화 작가로서 요구되는 다양한 필치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역량을 구비한 셈이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화목에 상관없이 크게 탓할 데 없는 기량을 보여준다. 6년 만에 이 정도의 실력을 갖출 수 있으려면 타고난 재능이 있거나 그에 상응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한 의문은 의외로 쉽게 풀린다. 그 짧은 기간에 그는 모두 1,800여 점이 넘는 작업량을 소화했다. 여기에는 사군자로부터 각종 화훼, 산수, 그리고 추상회화까지 망라하고 있다. 사군자로 시작하여 추상적인 조형능력까지 섭렵할 수 있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수업방식이 뛰어나고 재능이 있다고 할지라도 작업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기량은 향상되지 않는다. 그림은 예술이기 전에 기능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작업량이라면 그의 노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할 수 있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그는 이제 구태여 화본이나 소재를 직접 보지 않더라도 능히 원하는 상을 조형화할 수 있는 구성능력을 구비한 것이다.
이런 조형적인 기술 및 감각을 갖춘 이후의 작업 가운데서도 이번 첫 발표전을 위해 준비한 작품들은 독립적인 한 작가로서 등단하는데 전혀 손색이 없다. 기술적인 완성은 물론이려니와 화면 경영이 안정되어 있다. 특히 문인화로서의 격조를 잃지 않고 있다. 자칫 기술이 성하다보면 정신적인 영역을 소홀하기 십상인데 그는 그런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냉정함이 있다. 그래서일까. 소재에 상관없이 전체적인 구성이 단출하고 그 기운이 담백하고 소박하다.
이렇듯이 담백한 맛은 그 자신의 성품의 소산일 수도 있고 먹을 맑게 쓰는 소치일 수도 있다. 수묵의 농담이나 중첩 여부와 상관없이 맑고 담백하다는 것은 먹의 맛을 제대로 터득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수묵에서 탁한 기운을 걷어내면 생동감은 저절로 솟아오르게 되어 있다. 의식적으로 생동감을 표현하려고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단출하면서도 깔끔한 구성에다 먹의 기운을 살리면 생동감이 스스로 살아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는 첫 개인전으로서의 기대치를 충족시킨다. 물론 예술이란 기능의 숙련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여기에 덧붙여 수준 높은 안목과 부단한 자기연마, 즉 기술적인 세련미와 더불어 인격의 도야가 뒤따라야 한다. 그는 이러한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재능과 조형감각 그리고 열정을 가지고 있다. 이제 신인으로서의 무거운 짐을 벗고 산뜻한 기분으로 새로운 출발선상에 설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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